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인 대국으로부터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2016년 당시, 수천 년간 이어온 바둑의 정석을 뒤흔든 알파고의 ‘37수’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과 동시에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어디까지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는데요.
하지만 본격적인 AI 시대에 접어든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당시의 우려와는 사뭇 다릅니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고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궁극의 도구’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고 대국 10주년을 맞아 다시 서울을 찾은 Google DeepMind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그가 전하는 AI의 진화 방향과 ‘인간의 주도권’에 관한 핵심 메시지를 통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케터들이 붙잡아야 할 본질적인 이정표를 정리했습니다.
알파고 1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을 찾은 Google DeepMind CEO 데미스 하사비스
상향 평준화된 AI 시대에 브랜드만의 ‘지문’이 필요한 이유
콘텐츠 제작에 드는 비용과 노력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웬만큼 잘 만든 결과물은 이제 특별한 경쟁력이 되지 못합니다. 누구나 프롬프트 하나로 그럴듯한 캠페인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자, 비슷비슷하게 잘 만든 콘텐츠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콘텐츠를 만들기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탁월한 콘텐츠의 기준은 결국 ‘브랜드만의 고유한 지문’이 묻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I가 아직은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의 결이나, 브랜드가 꾸준히 이어온 스토리가 핵심이 됐습니다.
마케터는 브랜드만의 ‘영혼’을 지켜내야 합니다.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AI를 우리 브랜드만의 독특한 색깔을 선명하게 만드는 도구로 써야 합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이제 AI라는 도구를 내 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가 돼야 합니다. AI가 뽑아준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쓰는 수동적인 사용자에 머물지 않고, 기술을 활용해 남들과는 다른 여러분만의 진짜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합니다.”
— 데미스 하사비스, All-In Summit (2025)
한계 없는 가능성의 시대, 사람만이 더하는 ‘희소 가치’
콘텐츠가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New era of radical abundance)에 접어들면서, 과거에 마케팅의 강력한 무기였던 높은 제작비나 화려한 비주얼은 더 이상 특별한 경쟁력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가장 희귀하고 값진 가치는 신뢰, 진정성, 그리고 인간의 통찰력입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AI를 도구 삼아 자신에게 불필요한 정보와 광고를 순식간에 걸러낼 만큼 강력한 정보 통제권(Super-empowered)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케터는 단순히 많은 양의 콘텐츠를 뿌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소비자 한 명 한 명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연결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Google의 AI 기술은 마케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케터가 반복적인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진심이 담긴 스토리텔링과 브랜드 정체성을 정립하는 본질적인 고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미래에는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과,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부리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더 커질 것입니다. 진정한 차별화는 AI가 내놓는 평균적인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목소리를 그 위에 입힐 수 있을 때 만들어 집니다.”
— 데미스 하사비스, Y Combinator 인터뷰 (2026)
비약적인 도약의 시작은 ‘전략적 주도권’
데이터는 과거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어제까지 무엇이 통했는지는 알려주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까지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데이터가 제시하는 최적화된 경로는 효율을 높여줄 순 있어도,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비선형적인 도약은 결국 마케터가 설정한 명확한 전략과 방향성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마케터에게 필요한 전략적 주도권은 데이터가 말하는 통계적 확률에 매몰되지 않고,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활용해 자신이 설계한 전략적 가설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능력입니다. 마케터가 방향(What & Why)을 정의하면, AI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방법론(How)을 찾아내는 파트너가 됩니다. 즉, 데이터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AI의 분석력을 도구 삼아 자신의 전략적 확신을 더 견고하게 다듬어 나가는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데이터는 지도일 뿐, 어디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AI의 분석력은 마케터의 창의적 확신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그 확신이 승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장 정교한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 데미스 하사비스, All-In Summit (2025)
‘답’보다 중요한 ‘질문’의 힘
AI가 모든 질문에 척척 답을 내놓는 시대가 되면서, 마케터의 실력은 정답을 찾아내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서 판가름 납니다.
이제 독보적인 마케터는 단순히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기술, 심리, 문화를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는 ‘통찰가(Polymath)’가 시장을 주도할 것입니다.
이제 마케팅의 본질은 무언가를 ‘만드는 기술(Doing)'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만들 것인지 ‘사고하는 힘(Thinking)'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결국 기술을 다루는 ‘의도’를 명확히 정의하는 마케터만이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AI가 세상에 대한 모든 답을 알려줄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질문의 힘’입니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도구를 만들어내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AI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권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본질적인 질문을 멈추지 않고, 우리가 나아갈 목적지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 데미스 하사비스, Athens Innovation Summit (2025)